• 최종편집 2022-12-29(목)
 

국가보훈처는 1907년 일어난 정미의병 등에서 항일 구국운동을 펼친 김상태·신태식·김동신 선생을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30일 밝혔다.


이들은 1907년 일제의 고종 강제퇴위, 정미조약 강제체결, 군대해산 등에 반발해 정미의병이 봉기하자 일제에 맞서 나라를 위해 항쟁을 펼쳤다.


충북 단양에서 태어난 김상태(1862~1911) 선생은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 선포에 항거해 경북 문경에서 이강년 의진(의병진영) 중군장으로 의병에 참여했으며 이강년과 함께 유인석의 제천의병에서도 활동했다.


1907년 정미의병이 발생하자 제천·단양 일대의 의병을 규합해 이강년 의진에 합류했고, 그해 12월 이강진 의진이 해산하자 독자적으로 활동했다.


이듬해 이강년이 순국하자 남은 병력을 규합해 단양군 지역에서 친일파를 처단하고 일본군을 공격하는 활동을 이어갔다. 1911년 6월 풍기군에서 체포돼 대구로 압송됐고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사형선고를 받아 9월 순국했다.


2020년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신태식 선생의 생가와 선생이 지은 창의가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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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문경 출생인 신태식(1864~1932) 선생은 1895년 을미의병이 발생하자 문경 농암(籠岩)장터에서 문경·상주 지역의 일제 밀정을 처단했다.


1907년 정미의병이 봉기하자 단양에서 의병 수백 명을 모아 도대장(道大將)이 돼 이강년 의진에 합류해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고, 울진과 평해로 이동해 신돌석과 함께 삼척에서 활동했다.


1908년 9월 홍주 전투에서 싸웠으며 그해 12월 포천에서 일본군과 교전 중 왼쪽다리에 총상을 입고 일본군에 붙잡혔다. 이듬해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상고해 10년으로 감형돼 1918년 출소했다.


출소 이후 1920년 9월 독립운동의 재정 후원을 위한 비밀결사 조직인 조선독립운동후원의용단의 경상북도 단장을 맡아 군자금을 모금해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 지원하기도 했다.


1922년 11월 의용단이 일제 경찰에게 발각돼 대구 감옥에 수감,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아 복역했다.


충남 회덕에서 태어난 김동신(1871~1933) 선생은 1907년 8월 의병 80여 명을 이끌고 기삼연, 고광순과 함께 본격적인 의병 활동을 시작했다.


민긍호의 지원으로 의진을 강화한 선생은 구례 주재소를 습격해 일본군을 격퇴했으며 순창 우편취급소와 분파소를 공격하는 등 전라도와 경상도에서 활동했다.


의진의 활약상에 각지에서 의병이 합류해 1천여 명에 이르는 부대로 규모가 확대되자 선생은 충청·전라·경상도를 아우르는 삼남의병대장으로 불렸다.


1908년 2월 일제의 대대적인 체포작전에도 의진이 건재했으나 선생이 고향으로 돌아와 신병 치료를 받던 중 일제에 체포돼 공주지방재판소에서 내란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선생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김상태 선생과 신태식 선생에게 각각 1963년과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김동신 선생은 1977년에 같은 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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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기..] '12월 독립운동가' 김상태·신태식·김동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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