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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인 칼럼]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관행, 부패, 비리 등의 폐단,. 풀고가자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문재인 대통령 취임사 중. 적폐 청산이란 무엇을 하는 것일까? 청산해야 할 적폐들은 수없이 많지만, 최근 며칠 동안 선거와 관련된 뉴스를 보면서 떠오른 것은 유신헌법의 잔향이었다. 1972년에 제정되어 유신체제의 근간이 된 유신헌법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1조 2항에 나온 주권자에 대한 규정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은 그 대표자나 국민투표에 의하여 주권을 행사한다” 이후 대통령 긴급조치를 통해 이 헌법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표출하는 것 자체가 범죄로 규정된 것처럼, 주권자인 국민은 직접 정치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없고, 오직 투표나 청탁을 통해서만 정치에 관여할 수 있게 되었다. 즉, 누구를 지지하느냐 어느 줄에 서느냐가 ‘정치’가 된 셈이다. 지금껏 대한민국은 평등하지 못했고 공정하지 못했고 정의롭지 못했다. 불평등과 불공정과 부정의가 치유불능의 고질병처럼, 악성종양의 암처럼 모든 분야로 빠르게 전이되고 있었다. 정치는 관행이라는 전가의 보도로 썩어 갔고, 경제는 그들만의 주머니 채우기에 급급했고, 사회는 혼란으로 얼룩졌다. 문화는 블랙리스트라는 검열의 대상이었고 스포츠는 비선실세를 위한 홍위병이 됐다. 작금의 상황을 보면 더욱 기함할 판이다. 이러고도 나라냐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 내 것 네 것 없이 이 주머니에서 저 주머니로, 저 주머니에서 이 주머니로 그야말로 국민의 혈세인 세금이 쌈짓돈이 됐다. 적폐다. 국어사전은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을 적폐라고 정의하고 있다. 한국경제정의사전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관행, 부패, 비리 등의 폐단을 말한다. 이를 뿌리 뽑으려면 조직, 사회, 국가 전반의 전방위적 개조와 혁신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관련 책임자에 대한 문책과 처벌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적폐란 보수와 진보를 넘어 쌓이고 쌓여 온 잘못된 관행, 부패, 비리다. 이를 뿌리 뽑자는 것이 적폐청산이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촛불의 요구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난치병처럼 뿌리 내려 온 잘못을 바로 잡자는 것이다.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 1호다. 당연하다. 지금 검찰은 그 수사를 진행 중이다. 이를 놓고 야당과 보수언론에선 썩고 곪은 상처를 도려내는 적폐수술을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한다. 전 정권, 전전 정권, 전전전 정권, 전전전전 정권을 들먹이며 겁박을 가하기도 한다. 얼토당토 않다. 적폐청산은 어느 특정 정권을 겨냥하지 않는다. 오늘 대한민국의 곪고 문드러진 원인을 찾아 치유하자는 것이다. 나라를 갉아먹고 기생충처럼 기생해 온 암의 뿌리를 찾아 제대로 고치자는 것이다. 여기엔 여도 야도 없고 진보도 보수도 정권도 없다. 이를 정치보복으로 몰아가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자는 것이다. 그 저변에는 독점해 온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안달이 자리하고 있다. 적폐청산을 정치보복으로 모는 것은 ‘지금, 이대로, 쭉~’ 가고자 하는 기득권 세력의 희망사항이다. 한마디로 눈감고 넘어가자는 얘기다. 적당히 너도 한 때 잘못이 있고 나도 잘못이 있으니 적당히 덮고 가자는 것이다. 촛불의 염원을 보면서도 21세기 대한민국의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의를 포기하자고 한다. 다산 정약용은 큰 도적을 제거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모두 죽게 된다고 했다. IMF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사이먼 존슨은 수많은 경제위기를 지켜본 경험을 토대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모든 경제위기의 공통 원인은 부와 권력을 가진 특권층이 서로 결탁하여 과욕을 부리고 정부가 공공의 이익을 수호하기보다 마치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처럼 특권층의 이익을 위해 운영되는 것”이라고. 이걸 바로잡아 국가 기강을 세우고 경제위기를 막기 위한 것이 바로 적폐청산이다. 그러니 적당히 눈감고 넘어갈 수도, 그래서도 안 된다. 시작한 일을 끝내지 않고 흐지부지 하는 중도반단(中途半斷)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적폐청산이란 늦춰서도 멈춰서도 안 되는 절체절명의 막다른 길이다. 적폐청산의 기준이자 종착점은 잘못된 관행과 부패, 비리를 철저히 가려 뿌리 뽑고 바로잡아 새롭게 출발선상에 서는 것이다. 여기에 국격, 예우, 통합을 빌미로 구차한 변명이나 이유를 늘어놓는 것은 뭔가 구린데가 있기 때문이다. 분명히 하자. 잘못된 모든 것은 온전한 진실을 마주한 뒤 고민하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나라가 선다. 그것이 진정한 적폐청산의 평등이고 정의이고 공정이다. 증거물은 차고도 넘치지만 부인하거나 모르쇠다. 아직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암덩이들이 엮어 나오는 판에 판을 접자고? 국민들은 진실을 원한다. 촛불은 어둠을 밝히고자 있다. 바람 불면 촛불은 꺼진다는 오만은 아직 우리 주변을 망령처럼 맴돌고도 있다. 그래서 적폐청산은 더 더욱 늦춰서는 안 된다. 그리고 멈춰서도 안 된다. 이쯤에서 멈추자는 건 국민을 우습게 생각하거나 바보로 보기 때문이다.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 그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과 똑같이 어리석은 짓이다.” 알베르 카뮈의 말이다. 과거의 적폐를 적당히 덮으면 내일은 더 큰 적폐가 온다. 결코 적폐청산을 멈추거나 타협할 수 없는 이유다.
    • 오피니언
    • 발행인칼럼
    2017-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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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인 칼럼] 워싱턴 선언, 한미동맹의 새 지평을 열다
    4월 26일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 국빈 방문 중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이른바 ‘워싱턴 선언’을 발표했다. 한미동맹 수립 70주년을 기해 이뤄진 윤 대통령의 방문은 한미동맹의 전환을 위함이었다. 즉, 동맹이 앞으로 70년 더 견고하게 유지되면서 발전할 수 있는 새로운 초석을 다지는 데 주력한 것이다. 그 결과 한미 양국 정부, 공기관과 기업은 전례없는 50여 개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성과를 올렸다. 또한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드러났듯, 두 나라는 새로운 영역과 분야에서의 미래 발전을 위한 협력의 기틀(프레임워크와 협의체 등)을 마련하는데 성공했다. 이들 중 특히 「차세대 핵심·신흥기술 대화」 창설, 한미 전략적 사이버안보 협력 프레임워크의 체결과 한미 양자정보과학기술협력 공동성명 서명 등을 대표적인 사례로 주목할 수 있겠다. 또한 글로벌 방위산업에서의 협력 강화를 위해 한미 국방상호조달협정 체결을 촉구한 것도 미래 협력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겠다. 이 밖에 사이버와 우주 공간, 그리고 원자력과 인터넷 및 정보통신 분야에서의 협력 강화에 대한 양국의 약속도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하이라이트는 ‘워싱턴 선언’이다. 미국이 자국의 수도 명칭을 내세워 외국과의 선언을 명명한 적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동맹과의 군사안보협력을 명목으로 자국의 수도 이름을 내세운 적도 거의 없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개최된 ‘워싱턴 회의’ 군축회담만이 유일할 정도였다. 자유와 민주주의 대국 수도인 만큼 워싱턴의 이름으로 장식된 선언은 이전에도 몇 개 없었다. 가령, 주권회복(1918년 체코공화국), 평화중재(1994년 이스라엘-요르단관계), 역사청산(1998년 독일 나치의 인류 유산 탈취 반환 원칙) 등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들 결과물도 본래 공식 명칭이 있었으나 편의상 워싱턴 선언이라 불려졌다. 미국이 이처럼 동맹과의 관계 강화와 발전을 위해 자신의 수도 이름을 선뜻 내준 적이 없었던 사실만으로도 이번 ‘워싱턴 선언’은 가히 고무적인 결과라 할 수 있겠다. 더욱이 북한의 핵위협으로부터 동맹국 한국의 안보와 안전을 지켜내겠다는 미국의 결의를 자국의 수도명을 내걸고 표현한 것은 외교사적으로도 상당한 의미라 평가할 수 있다. 더욱이 미국의 외교 역사에서 이런 경우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번 ‘워싱턴 선언’은 북한 핵위협에 한미가 공동 대응하기 위한 기제(機制)를 창출한 것만으로도 지대한 평가를 내릴 수 있다. 미국의 대북 핵억지력을 위한 핵무기 의사결정권에 우리의 발언권, 의사권, 정보공유권이 최소한 외교적인 의미에서 모두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양국 정상이 합의한 ‘핵협의그룹(Nuclear Consultative Group, NCG)’으로 체현될 것이다. 혹자는 이 협의체가 나토(NATO)의 ‘ ’핵기획그룹(Nuclear Planning Group)’보다 미국의 핵억지력 보장 수준이 낮아 실제적인 효과가 없을 것이라 평가한다. 그러나 그 면면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나토의 핵기획그룹은 핵억지력 의사결정과정에서 정치적 통제력을 발휘하게끔 보장한다. 핵관련 논의에 회원국이 모두 참여하게끔 되어 있다. 논의의 의제로 나토의 핵억지력의 전반적인 실효성, 핵무기의 안전성, 안보성과 유효성, 그리고 소통과 정보 체계 등이 포함된다. 우리와 미국의 ‘핵협의그룹’과 다른 점은 핵무기의 안정성, 안보성과 그 유효성 의제가 없는데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토와 달리 미국이 우리나라에 전술핵 배치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워싱턴 선언’이 더 고무적인 것은 미국이 대한민국과 사상 처음으로 핵억지력을 위한 협의체를 만들었다는 데 있다. 미국은 나토를 제외하고 그 어느 동맹과도 자신의 핵 운영 시스템에 대한 정보 공유는 물론 논의 자체를 한 적이 거의 없다. 미국만이 독점할 수 있는 미국만의 고유의 것이다. 때문에 그 어떠한 나라에게도 핵무기에 관한 정보와 결정권은 이른바 넘사벽이었다. 이런 넘사벽이 이번 ‘워싱턴 선언’으로 한미 간에 치워진 것이다. 더욱이 미국이 양자 차원에서 어떠한 나라와도 이런 시스템을 운영하지 않는 사실에서도 고무적이라 할 수 있겠다. 한미의 ‘핵협의그룹’이 나토의 ‘핵기획그룹’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할 부분은 협의 개최 회수다. 나토의 경우 1년에 1~2번 정도 협의가 개최된다. 반면 우리의 핵협의그룹은 분기마다 개최될 것이라는 것을 우리 대통령실 측이 지난 27일에 밝혔다. 한미 협의가 차관보급 수준에서 진행될 것이기 때문에 혹자는 이를 나토의 국방장관급의 수준에 비교하며 의미를 폄훼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와 같이 북한의 실질적인 핵위협에 노출된 나라의 핵억지력에 관한 논의는 실무에 대한 높은 이해력과 전문성을 갖춘 이들이 나서서 진행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한미동맹의 새로운 지평을 연 이번 ‘워싱턴 선언’의 가치와 의미는 역시 중국과 북한의 예민한 반응으로 반증된다. 중국은 27일 외교부 대변인 기자회견과 28일 자 「환구시보」 사설로 선언에 대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미국이 사전에 이를 베이징에 브리핑을 했음에도 말이다. 그것도 우리한테만 말이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어떤 나라, 어떤 군대도 힘을 믿고 약자를 괴롭히거나 시대 흐름에 역행에 침략을 확대하면 반드시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릴 것이다”라며 선언을 도출한 우리를 비방했다. 「환구시보」 사설은 우리가 잘 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경고하면서 미국의 핵우산이 비현실적이고 새로운 위험만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북한을 더 자극하고 한반도의 안보 딜레마만 부축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의 비평에서 가장 큰 문제는 ‘워싱턴 선언’의 대상과 목적을 의도적으로 오독한 데 있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북한의 비평이 더 흥미로운 이유다. 북한은 선언에서 미 핵잠수함의 정기적인 기항에 주목했을 것이다. 북한은 특히 미 해군의 오하이오급 핵잠수함을 세상에서 제일 두려워한다. 그런데 이번 선언은 북한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괴물’의 정기적인 출현을 약속했다. 지난 29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의 원색적 비난이 모순을 보인 것이 이런 북한의 두려움의 방증이다. 그는 선언이 ‘극악한 산물이나 빈 껍데기’라며 비논리적이고 거의 실언적인 발언으로 당혹감을 내비쳤다. ‘워싱턴 선언’으로 한미동맹의 새 지평의 열림을 만천하에 알렸다. 이를 기반으로 우리의 안보, 안보이익, 외교 역량을 한 층 더 발휘하는데 주력해야겠다. 미국의 핵억지력 기획에서부터 운영까지 그 어느 나라에도 관여하거나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적이 없는 사실의 의미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한반도 지역과 관련하여 미국의 핵전력 작전 기획과 핵자산 운영에 대한 우리의 정치적 권한과 권리가 어느 정도 보장받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렇게 보장된 우리의 발언권, 의사권과 정보공유권을 우리 국민의 안위와 행복을 위해 정부가 잘 활용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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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인칼럼
    2023-05-01
  • [발행인 칼럼] 세월호 사고 후 "이태원사태가 남긴 아품"
    지난해 ‘10·29 참사’가 발생한 지 5개월이 넘었다. 사망자 157명과 부상자 197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한 압사 사고가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믿기 어렵다. 친구나 가족이 사상자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한없이 작아지는 요즘이다. 이태원 10·29 참사는 우리 사회에 많은 것을 남길 것이다. 누군가를 잃었다는 슬픔과 지키지 못했다는 분노, 수사 과정에서 밝혀질 사실들,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 아픔을 겪는 시민들이 바로 참사 후 남겨질 것들이다. 가족의 슬픔과 국가의 안일한 태도는 슬픔과 분노와 같은 감정은 참사 당사자나 그의 지인들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느끼는 감정이 되었다. 참사 직후부터 수위가 높고 자극적인 사진이나 영상들이 SNS를 통해 공공연하게 공유되면서 참사를 간접 경험한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참사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더라도 장면을 접하면 많은 감정과 생각이 든다. 전문가들은 많은 시민이 목격하는 가운데 누구나 접근할 수 있던 익숙한 시간과 이전부터 핼러윈 축제로 유명했던 장소에서 참사가 벌어졌다는 사실에 시민들이 받는 충격이 더욱 커졌다고 말한다. 수많은 시민이 ‘나도 겪을 수 있던 일’이라고 생각해 정서적 타격이 더욱 거센 것이다. 어쩔 수 없는 현상이지만, 트라우마로 남지 않도록 애쓰는 과정도 필요하다. 이에 정부를 비롯하여 일부 학회까지 나선 가운데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에서는 직접적 충격을 입은 사람부터 각종 미디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심리적 스트레스를 겪는 사람까지 트라우마를 총 5단계로 분류했다. 이에 따르면, 참사를 직간접적으로 접한 전 국민이 트라우마에 빠질 수 있다. 문제는 트라우마를 회복하지 못한 경우이다. 참사 후 트라우마를 겪는 행위는 큰 문제가 아니지만, 장기화되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올 수 있다. 심할 경우 우울증이나 자살과 같은 이차적인 문제가 동반되기도 한다. 다시는 이런 사태가 발생되어서는 안되는 기억하고 가슴에 새겨야 하는 참사이지만, 지나치게 매몰돼 일상생활에 지장이 갈 정도로 빠져있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이는 온전한 애도를 방해할 수 있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적절한 치료를 받고 관련 조치에 응하는 모습이 중요하다. 이태원의 고통과 분노 그리고 참사 후 남겨질 또 다른 것은 수사 과정에서 밝혀질 사실들이다. 이 사실들은 결국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을 지목할 것이고, 후속 대처와 사고에 대한 예방 방안도 마련할 것이다. 사건 사고는 어느 곳에서나 일어날 수 있지만, 미리 대비하고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설령 사건이 발생했을지라도 침착하게 대처하는 제도도 필요하다. 이번 참사가 앞선 방안과 제도의 부재로 큰 피해를 낳았던 만큼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지고 대처 및 예방 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끝으로 이태원에서 발생한 이 과정에서 많은 다툼과 갈등이 유발될 수 있다. 그런데도 해당 과정이 중요한 이유는 다시는 앞선 참사와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추측에 휘둘리지 말고 진실에 초점을 맞춰 수사가 진행돼야 한다. 이후에 적절한 조치를 시행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시민들 역시 진실에 집중하며, 더 좋은 방안과 제도가 마련될 수 있도록 관심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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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인칼럼
    2023-04-25
  • [발행인 칼럼]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관행, 부패, 비리 등의 폐단,. 풀고가자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문재인 대통령 취임사 중. 적폐 청산이란 무엇을 하는 것일까? 청산해야 할 적폐들은 수없이 많지만, 최근 며칠 동안 선거와 관련된 뉴스를 보면서 떠오른 것은 유신헌법의 잔향이었다. 1972년에 제정되어 유신체제의 근간이 된 유신헌법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1조 2항에 나온 주권자에 대한 규정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은 그 대표자나 국민투표에 의하여 주권을 행사한다” 이후 대통령 긴급조치를 통해 이 헌법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표출하는 것 자체가 범죄로 규정된 것처럼, 주권자인 국민은 직접 정치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없고, 오직 투표나 청탁을 통해서만 정치에 관여할 수 있게 되었다. 즉, 누구를 지지하느냐 어느 줄에 서느냐가 ‘정치’가 된 셈이다. 지금껏 대한민국은 평등하지 못했고 공정하지 못했고 정의롭지 못했다. 불평등과 불공정과 부정의가 치유불능의 고질병처럼, 악성종양의 암처럼 모든 분야로 빠르게 전이되고 있었다. 정치는 관행이라는 전가의 보도로 썩어 갔고, 경제는 그들만의 주머니 채우기에 급급했고, 사회는 혼란으로 얼룩졌다. 문화는 블랙리스트라는 검열의 대상이었고 스포츠는 비선실세를 위한 홍위병이 됐다. 작금의 상황을 보면 더욱 기함할 판이다. 이러고도 나라냐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 내 것 네 것 없이 이 주머니에서 저 주머니로, 저 주머니에서 이 주머니로 그야말로 국민의 혈세인 세금이 쌈짓돈이 됐다. 적폐다. 국어사전은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을 적폐라고 정의하고 있다. 한국경제정의사전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관행, 부패, 비리 등의 폐단을 말한다. 이를 뿌리 뽑으려면 조직, 사회, 국가 전반의 전방위적 개조와 혁신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관련 책임자에 대한 문책과 처벌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적폐란 보수와 진보를 넘어 쌓이고 쌓여 온 잘못된 관행, 부패, 비리다. 이를 뿌리 뽑자는 것이 적폐청산이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촛불의 요구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난치병처럼 뿌리 내려 온 잘못을 바로 잡자는 것이다.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 1호다. 당연하다. 지금 검찰은 그 수사를 진행 중이다. 이를 놓고 야당과 보수언론에선 썩고 곪은 상처를 도려내는 적폐수술을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한다. 전 정권, 전전 정권, 전전전 정권, 전전전전 정권을 들먹이며 겁박을 가하기도 한다. 얼토당토 않다. 적폐청산은 어느 특정 정권을 겨냥하지 않는다. 오늘 대한민국의 곪고 문드러진 원인을 찾아 치유하자는 것이다. 나라를 갉아먹고 기생충처럼 기생해 온 암의 뿌리를 찾아 제대로 고치자는 것이다. 여기엔 여도 야도 없고 진보도 보수도 정권도 없다. 이를 정치보복으로 몰아가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자는 것이다. 그 저변에는 독점해 온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안달이 자리하고 있다. 적폐청산을 정치보복으로 모는 것은 ‘지금, 이대로, 쭉~’ 가고자 하는 기득권 세력의 희망사항이다. 한마디로 눈감고 넘어가자는 얘기다. 적당히 너도 한 때 잘못이 있고 나도 잘못이 있으니 적당히 덮고 가자는 것이다. 촛불의 염원을 보면서도 21세기 대한민국의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의를 포기하자고 한다. 다산 정약용은 큰 도적을 제거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모두 죽게 된다고 했다. IMF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사이먼 존슨은 수많은 경제위기를 지켜본 경험을 토대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모든 경제위기의 공통 원인은 부와 권력을 가진 특권층이 서로 결탁하여 과욕을 부리고 정부가 공공의 이익을 수호하기보다 마치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처럼 특권층의 이익을 위해 운영되는 것”이라고. 이걸 바로잡아 국가 기강을 세우고 경제위기를 막기 위한 것이 바로 적폐청산이다. 그러니 적당히 눈감고 넘어갈 수도, 그래서도 안 된다. 시작한 일을 끝내지 않고 흐지부지 하는 중도반단(中途半斷)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적폐청산이란 늦춰서도 멈춰서도 안 되는 절체절명의 막다른 길이다. 적폐청산의 기준이자 종착점은 잘못된 관행과 부패, 비리를 철저히 가려 뿌리 뽑고 바로잡아 새롭게 출발선상에 서는 것이다. 여기에 국격, 예우, 통합을 빌미로 구차한 변명이나 이유를 늘어놓는 것은 뭔가 구린데가 있기 때문이다. 분명히 하자. 잘못된 모든 것은 온전한 진실을 마주한 뒤 고민하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나라가 선다. 그것이 진정한 적폐청산의 평등이고 정의이고 공정이다. 증거물은 차고도 넘치지만 부인하거나 모르쇠다. 아직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암덩이들이 엮어 나오는 판에 판을 접자고? 국민들은 진실을 원한다. 촛불은 어둠을 밝히고자 있다. 바람 불면 촛불은 꺼진다는 오만은 아직 우리 주변을 망령처럼 맴돌고도 있다. 그래서 적폐청산은 더 더욱 늦춰서는 안 된다. 그리고 멈춰서도 안 된다. 이쯤에서 멈추자는 건 국민을 우습게 생각하거나 바보로 보기 때문이다.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 그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과 똑같이 어리석은 짓이다.” 알베르 카뮈의 말이다. 과거의 적폐를 적당히 덮으면 내일은 더 큰 적폐가 온다. 결코 적폐청산을 멈추거나 타협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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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인칼럼
    2017-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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