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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편의 영화] 안중근역, "영웅의 위대함을 담고자 노력했습니다."
    "영웅의 위대함을 담고자 노력했습니다."(안중근 의사 역 배우 정성화) 국가보훈처는 21일 오후 보훈가족 대상으로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그린 뮤지컬 영화 '영웅' 시사회를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개최했다. 시사회에는 안 의사 사촌형 안장근의 손녀 안기영 여사, 안중근의사숭모회, 독립유공자 유족 등 100여 명이 초청됐다. 영화 '영웅'은 안중근 의사의 의거 준비로부터 죽음의 순간까지 1년을 밀도 있게 다룬다. 원작 뮤지컬 '영웅'의 초연부터 안중근 의사 역을 맡아 10여 년간 폭발적 가창력으로 무대를 압도한 정성화가 영화에서도 안 의사로 분했다. 여기에 안 의사 어머니이자 정신적 지주인 '조마리아' 역으로 나문희 씨가, 목숨을 걸고 일본의 정보를 빼내는 독립군 정보원 '설희' 역으로 김고은이 각각 열연했다. 시사회에는 윤제균 감독, 안 의사 역의 정성화, 우덕순 역의 조재윤, 조도선 역의 배정남, 마진주 역의 박진주가 찾았다. 우덕순과 조도선은 안 의사와 함께 거사를 모의한 독립유공자다. 윤 감독은 안기영 의사 등 독립유공자와 유족을 향해 "오늘은 정말 특별하게 소중한 분들 앞에서 저희 영화를 선봬 감회가 새롭다"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분들이 있기에 오늘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성화는 "유공자와 가족 여러분은 대한민국의 자긍심과 자부심의 이유"라며 "대단한 분의 위대함을 담고자 노력했다"고 출연 소회를 밝혔다. 박민식 보훈처장도 "오늘 영화를 보고 돌아가면서 영웅 안중근 의사를 마음에 새기시길 바란다"고 말한 뒤 윤 감독을 향해 "이번 영화가 천만을 넘어 이천만, 아니 오천만 대한민국 국민이 전부 보는 영화가 되기 바란다"고 덕담을 하자 무대와 객석 양측에서 박수가 터졌다. 안기영 여사는 "영웅이라는 타이틀만 들어도 가슴이 벅차고 감개무량하다"며 "특히 청소년들이 이 영화를 보고 안중근 의사의 독립정신을 가슴에 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1879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안중근 의사는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하얼빈역에서 저격했다. 체포하려 달려드는 러시아군 앞에서 안 의사는 하늘을 향해 "코레아 우라"(대한독립 만세)를 크게 세 번 외쳤다. 안 의사는 심문과 재판 중에도 일본의 부당한 침략행위를 비판하며 시정을 요구했고, 조국의 완전한 독립과 동양 평화 정착을 주장하다가 1910년 2월 14일 사형을 선고받은 후 3월 26일 순국했다. 박민식 보훈처장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구국의 영웅인 안중근 의사님의 애국혼을 담은 영화를 통해 오직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의사님의 숭고한 위국헌신(爲國獻身)의 정신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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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22
  • [기억하기..] '12월 독립운동가' 김상태·신태식·김동신
    국가보훈처는 1907년 일어난 정미의병 등에서 항일 구국운동을 펼친 김상태·신태식·김동신 선생을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30일 밝혔다. 이들은 1907년 일제의 고종 강제퇴위, 정미조약 강제체결, 군대해산 등에 반발해 정미의병이 봉기하자 일제에 맞서 나라를 위해 항쟁을 펼쳤다. 충북 단양에서 태어난 김상태(1862~1911) 선생은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 선포에 항거해 경북 문경에서 이강년 의진(의병진영) 중군장으로 의병에 참여했으며 이강년과 함께 유인석의 제천의병에서도 활동했다. 1907년 정미의병이 발생하자 제천·단양 일대의 의병을 규합해 이강년 의진에 합류했고, 그해 12월 이강진 의진이 해산하자 독자적으로 활동했다. 이듬해 이강년이 순국하자 남은 병력을 규합해 단양군 지역에서 친일파를 처단하고 일본군을 공격하는 활동을 이어갔다. 1911년 6월 풍기군에서 체포돼 대구로 압송됐고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사형선고를 받아 9월 순국했다. 2020년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신태식 선생의 생가와 선생이 지은 창의가 표지 경북 문경 출생인 신태식(1864~1932) 선생은 1895년 을미의병이 발생하자 문경 농암(籠岩)장터에서 문경·상주 지역의 일제 밀정을 처단했다. 1907년 정미의병이 봉기하자 단양에서 의병 수백 명을 모아 도대장(道大將)이 돼 이강년 의진에 합류해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고, 울진과 평해로 이동해 신돌석과 함께 삼척에서 활동했다. 1908년 9월 홍주 전투에서 싸웠으며 그해 12월 포천에서 일본군과 교전 중 왼쪽다리에 총상을 입고 일본군에 붙잡혔다. 이듬해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상고해 10년으로 감형돼 1918년 출소했다. 출소 이후 1920년 9월 독립운동의 재정 후원을 위한 비밀결사 조직인 조선독립운동후원의용단의 경상북도 단장을 맡아 군자금을 모금해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 지원하기도 했다. 1922년 11월 의용단이 일제 경찰에게 발각돼 대구 감옥에 수감,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아 복역했다. 충남 회덕에서 태어난 김동신(1871~1933) 선생은 1907년 8월 의병 80여 명을 이끌고 기삼연, 고광순과 함께 본격적인 의병 활동을 시작했다. 민긍호의 지원으로 의진을 강화한 선생은 구례 주재소를 습격해 일본군을 격퇴했으며 순창 우편취급소와 분파소를 공격하는 등 전라도와 경상도에서 활동했다. 의진의 활약상에 각지에서 의병이 합류해 1천여 명에 이르는 부대로 규모가 확대되자 선생은 충청·전라·경상도를 아우르는 삼남의병대장으로 불렸다. 1908년 2월 일제의 대대적인 체포작전에도 의진이 건재했으나 선생이 고향으로 돌아와 신병 치료를 받던 중 일제에 체포돼 공주지방재판소에서 내란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선생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김상태 선생과 신태식 선생에게 각각 1963년과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김동신 선생은 1977년에 같은 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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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30
  • 2020도쿄 올림픽에 나타난 ‘독도는 일본 땅’
    '2020도쿄 올림픽' 개최가 57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일본은 올림픽 취소나 연기 없이 개최한다고 방침을 세우고 강행군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2020도쿄 올림픽 공식 홈페이지에 독도가 일본영토로 표기된 것이 밝혀지는 등 여전히 일본 정부의 역사왜곡 및 독도에 대한 야욕은 끝나지 않았다. 국민주권연대는 27일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독도는 일본 땅’ 올림픽 일본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이 성화봉송 지도에 독도를 일본 땅으로 표시한 것에 대해 규탄했다. 지난 2019년 한국정부와 한국민들이 일본 정부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기한 것에 거센 항의를 하자 2020도쿄 올림픽 공식 홈페이지에서 삭제를 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독도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은 분명”하다면서 한국 정부와 대한 체육회의 주장을 받아 들일 수 없다고 밝히며 향후에도 ‘독도는 일본 땅’이란 왜곡 프레임을 유지할 것을 내비쳤다. 한편, 최근 미국 정부가 일본을 방문 금지국가로 등급을 상정한 가운데 1년 연기된 2020 도쿄 올림픽이 개최될 수 있을지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각국에서 선수단 파견을 취소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한국 정부도 일본의 독도 침탈 야욕에 단호한 대처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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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28
  • [책 소개] 박용규의 ‘전봉준 최시형 독립유공 서훈의 정당성’
    2차 동학농민혁명 후 체포된 전봉준은 1895년 1월 9일 나주 초토영에서 일본인 미나미 고시로에게 취조를 받는다. 미나미 : 너희들이 거병한 대목적을 숨기지 말고 말해보라. 전봉준 : 7월 일본군이 경성에 들어가 왕궁을 포위했다는 것을 듣고 크게 놀라 동지를 모아서 이를 쳐서 없애려고 다시 군대를 일으켰다. 이후 전봉준은 미나미 고시로 소좌의 서울압송 명령에 의해 1895년 1월 30일 나주를 출발해 2월 18일 서울로 압송됐다. 일본 공사관까지 들것에 실려온 전봉준은 이노우에 카오루 공사의 “어찌해서 이 폭거를 일으켰는가?”란 질문에 “작년 6월(음력) 일본병이 경성에 들어왔다는 것을 듣고, 함께 물리치려고 마침내 의병을 일으키기에 이르렀다. 우리 동학당의군, 그 무리들은 훈련이 없고 무기는 완구적인 것이다. 사람, 무기 모두 정예한 일본병에 비길 수 있다고 본디 믿지 않았던바, 그렇지만 임금이 굴욕당하면 신하는 죽는 법, 죽음을 당하고서 끝낼 결심을 가지고 일어섰다.”라고 답한다. 민족문제연구소 박용규 연구위원이 3.1절 102주년을 앞두고 한국사회가 유독 농민들의 항일독립운동에 대해 기억하지 못하고, 보훈처가 양반출신들은 대부분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았지만 농민출신들의 항일독립운동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출판사 ‘인간과자연사’에서 출판한 박용규 연구위원의 책 ‘전봉준 최시형 독립유공 서훈의 정당성’에서는 1차 동학농민운동은 반봉건에 저항하는 투쟁이었지만, 2차 동학농민운동은 그 목적이 분명하게 항일독립운동이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전봉준이 체포되어 나주 초토영에서 미나미 고시로와 나눈 취조에서도 나타나고, 서울로 압송되어 일본 공사관에서 이노우에 카오루 공사와 나눈 취조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특히 전봉준을 사형에 처한 1895년 3월 29일 법무아문 권설재판소 판결문을 보면 더욱더 분명하다. “피고(전봉준)는 일본 군대가 대궐로 들어갔다는 말을 듣고 필시 일본인이 우리나라를 병탄(倂呑)하고자 하는 뜻 인줄 알고 일본군을 쳐서 물리치고 일본 거류민을 국외로 몰아낼 마음으로 다시 군대를 일으킬 것을 도모하여 전주 근처 삼례역이 토지가 넓고 전라도 요충지여서 1894년 9월경에 태인을 출발하여 원평을 지나 삼례역에 이르러 그곳으로 군대를 일으키는 대도소(大都所)를 삼고,..(중략) 같은 해 10월 26일쯤 충청도 공주에 다다렀더니, 일본군이 먼저 공주성을 웅거하여 있기에 전후 2차례 접전하여 보았건마는 두 번 다 크게 패하였는지라.(이하 생략)” 민족문제연구소 박용규 연구위원은 “아직도 대한민국은 양반의 나라인가? 독립유공 서훈에서 항일 농민은 차별 받고 있다”면서 1894년 8월 발생한 갑오의병, 1895년 을미의병 등 의병 운동 참여자에 대해서는 국가보훈처가 지금까지 2천여 명에게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했지만, 갑오의병과 을미의병 사이에 있는 2차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농민들에게는 국가보훈처가 서훈대상에서 누락시키고 있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박용규 연구위원은 ‘전봉준 최시형 독립유공 서훈의 정당성’ 책에서 2차 동학농민혁명에 참가했다가 일본군에 의해 총살, 사살, 작두형, 화형을 당해 서거한 순국자 111명과 일본군과 싸우다가 전사하거나 일본군에 체포되어 총살 당한 순국자 6명, 일본군에 항거하다가 자결한 순국자 2명 등 총 119명의 명단을 뽑아 정리했다. 지난 2020년 3월 18일 별세한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은 병환 중에 “동학농민혁명 현재와 미래, 어떻게 할 것인가”(2019년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정기학술대회 자료집)란 논문을 썼다. 논문에서 이이화 선생은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현재의 정권에서도 전봉준 등 농민군 지도자들이 아직도 독립유공자로 서훈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하며, 문재인 정부에서는 2차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한 농민들이 독립유공자로 인정 받을 수 있기를 촉구했다. 또한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대상요건에 따르면 ‘순국선열’은 “일제의 국권침탈(1895년) 전후로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하기 위하여 항거하다가 그 항거로 인하여 순국한 분”으로, ‘애국지사’는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로 1945년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하기 위하여 항거한 사실이 있는 분”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규정에 따라 2차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한 모든 순국선열은 독립유공자 서훈 대상에 해당한다. 특히 지난 2019년 동학농민혁명이 발생한지 125년만에 정부는 동학농민혁명을 국가기념일(5월 11일)로 지정해 당시 이낙연 국무총리가 행사에 참석해 축사를 했다. 저자 박용규 연구위원은 동학농민혁명이 독립운동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일부 주장과 국가보훈처 심사위원들의 “동학농민운동은 그 동기가 반봉건 성격이 크다. 2차 봉기도 1차 봉기의 연속선에 일어났다. 동학농민운동을 민족운동으로는 보나 적극적 독립운동으로 보지 않는다. 국권회복을 위한 적극적 독립운동이 아니다. 항일이라고 해서 다 포상하지 않는다”라는 의견에 대해 “2020년부터 새로 사용하는 고등학교 8종 한국사 교과서의 서술 내용을 통해 반박이 가능하다. 8종 교과서 전부가 2차 동학농민운동은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해 재봉기를 했다’라고 기술했음”을 강조했다. 한편, 박용규 연구위원은 독립유공 서훈 내규를 고쳐야 한다고 말한다. 최근 확인된 바에 따르면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 서훈 내규에 1962년 이병도와 신석호(두 명 모두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됨)가 정한 독립유공 내규에서 “독립운동의 기점은 을미의병이다”라고 한것에 근거해 심사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즉 을미의병 이전에 발생한 2차 동학농민혁명 참가자들이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받으려면 국가보훈처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이병도와 신석호가 규정한 내규를 고쳐야 한다. 국가보훈처 먼저 친일청산을 해야한다. 이병도와 신석호에서 벗어나야 한다. 친일파 이병도와 신석호가 만든 내규에 충실하다는 국가보훈처는 을미의병 이전에 발생한 갑오의병(1894년) 참여자들에 대해서는 독립유공 서훈대상에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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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2-17
  • '김상옥 의사 일대천 서울시가전 승리 98주년 기념', 현충원 참배
    김상옥의사기념사업회(회장 박수현)는 '김상옥 의사 일대천 서울시가전 승리 제98주년'을 기념해 22일 오전 11시 국립 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된 김상옥 의사의 묘소에서 참배식을 가졌다. 김상옥의사기념사업회는 코로나19 확산예방을 위한 정부방역지침 준수와 국민들의 자발적인 방역 협조 노력에 동참하고자, '김상옥의사 일대천 항일 서울시가전 승리 제98주년 기념식'을 부득이하게 연기했다. 박수현 김상옥의사기념사업회 회장은 "의사님의 애국정신과 나라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친 분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중요한 행사임에도,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고려한 끝에 내린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라며 기념식 연기에 대해 말했다. 아울러 박 회장은 "무엇보다 코로나19로 어려움에 처한 대한민국과 국민들의 일상 회복을 위한 선택이니, 이는 평생을 조국과 민족을 위해 헌신해오신 김상옥 의사님의 뜻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라며 "기념식 연기에 대해 우리의 마음이 의사님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고 소회를 밝혔다. 나아가 박 회장은 "코로나19의 완전한 종식과 함께 다가올 100주년 기념식에 맞춰 김상옥의사기념사업회의 홍보와 후손들의 보훈의식과 호국, 민주의 가치에 대한 교육에도 앞장 설 것이다"라며 "특히 세대와 연령에 맞춘 교육 자료의 다각화, 청소년기 학생들을 위한 맞춤형자료집, 아동도서보급에 중점을 두고 우리 사회 보훈 문화 확산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김상옥의사 묘소참배는 박수현 김상옥기념사업회 회장, 김진혁·차영준 김상옥기념사업회 부회장, 유족대표 김세원 김상옥기념사업회 이사가 참여한 가운데 코로나19 방역지침을 준수하고 약식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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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22
  • 조선의열단기념사업회 2대 회장에 박우섭 씨 취임
    조선의열단기념사업회는 10일(화) 오후 6시 광복회관 3층 대강당에서 초대 김원웅 회장의 뒤를 이어 2대 박우섭 신임회장이 취임하는 회장 이·취임식을 연다. 충남 예산 출신의 박 신임회장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오랜 정당 활동을 하였으며, 세 번에 걸쳐 인천 남구청장을 역임했다. 임기는 3년이다. 또한 조선의열단기념사업회는 이날 회장 이·취임식에 이어 조선의열단 창립 제101주년 기념식과 함께 기념사업회 내에 반민족행위 및 친일잔재청산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발대식을 가진다. 특위는 광복 75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는 친일의 잔재가 청산되지 못한 채, 민족공동체 회복을 가로막고 있어 시대적 요구에 따라 조직되었으며, 앞으로 △ 전국적인 조직과 네트워크 구성, △ 전국 광역단체 및 기초자치단체 조례제정 캠페인, △ 반민족 행위 처벌을 위한 국회 입법 캠페인, △ 친일잔재 문화, 언어, 구조물, 생활문화 등을 청산하기 위한 활동 및 캠페인 등을 벌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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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1-08

실시간 독립운동 기사

  • [한편의 영화] 안중근역, "영웅의 위대함을 담고자 노력했습니다."
    "영웅의 위대함을 담고자 노력했습니다."(안중근 의사 역 배우 정성화) 국가보훈처는 21일 오후 보훈가족 대상으로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그린 뮤지컬 영화 '영웅' 시사회를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개최했다. 시사회에는 안 의사 사촌형 안장근의 손녀 안기영 여사, 안중근의사숭모회, 독립유공자 유족 등 100여 명이 초청됐다. 영화 '영웅'은 안중근 의사의 의거 준비로부터 죽음의 순간까지 1년을 밀도 있게 다룬다. 원작 뮤지컬 '영웅'의 초연부터 안중근 의사 역을 맡아 10여 년간 폭발적 가창력으로 무대를 압도한 정성화가 영화에서도 안 의사로 분했다. 여기에 안 의사 어머니이자 정신적 지주인 '조마리아' 역으로 나문희 씨가, 목숨을 걸고 일본의 정보를 빼내는 독립군 정보원 '설희' 역으로 김고은이 각각 열연했다. 시사회에는 윤제균 감독, 안 의사 역의 정성화, 우덕순 역의 조재윤, 조도선 역의 배정남, 마진주 역의 박진주가 찾았다. 우덕순과 조도선은 안 의사와 함께 거사를 모의한 독립유공자다. 윤 감독은 안기영 의사 등 독립유공자와 유족을 향해 "오늘은 정말 특별하게 소중한 분들 앞에서 저희 영화를 선봬 감회가 새롭다"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분들이 있기에 오늘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성화는 "유공자와 가족 여러분은 대한민국의 자긍심과 자부심의 이유"라며 "대단한 분의 위대함을 담고자 노력했다"고 출연 소회를 밝혔다. 박민식 보훈처장도 "오늘 영화를 보고 돌아가면서 영웅 안중근 의사를 마음에 새기시길 바란다"고 말한 뒤 윤 감독을 향해 "이번 영화가 천만을 넘어 이천만, 아니 오천만 대한민국 국민이 전부 보는 영화가 되기 바란다"고 덕담을 하자 무대와 객석 양측에서 박수가 터졌다. 안기영 여사는 "영웅이라는 타이틀만 들어도 가슴이 벅차고 감개무량하다"며 "특히 청소년들이 이 영화를 보고 안중근 의사의 독립정신을 가슴에 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1879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안중근 의사는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하얼빈역에서 저격했다. 체포하려 달려드는 러시아군 앞에서 안 의사는 하늘을 향해 "코레아 우라"(대한독립 만세)를 크게 세 번 외쳤다. 안 의사는 심문과 재판 중에도 일본의 부당한 침략행위를 비판하며 시정을 요구했고, 조국의 완전한 독립과 동양 평화 정착을 주장하다가 1910년 2월 14일 사형을 선고받은 후 3월 26일 순국했다. 박민식 보훈처장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구국의 영웅인 안중근 의사님의 애국혼을 담은 영화를 통해 오직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의사님의 숭고한 위국헌신(爲國獻身)의 정신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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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22
  • 19일, 윤봉길 의사 순국 90주기 추념식
    '훙커우 공원 의거'로 민족의 독립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린 매헌 윤봉길 의사의 순국 90주기 추념식이 19일 오전 11시 용산구 효창공원에서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린다고 국가보훈처가 18일 밝혔다. 박민식 국가보훈처장, 명노승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장을 비롯해 기념사업회 회원, 독립유공자 유족 등 200여 명이 참석한다. 추념식은 국민의례, 약전봉독, 추념사, 헌화·분향, 유시 낭독, 추모가 순으로 진행된다. 1908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윤봉길 의사는 1919년 3·1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일제의 식민교육을 거부, 학교(덕산공립보통학교)를 자퇴하고 사설 서당인 오치서숙에서 한학을 수학했다. 1928년 부흥야학원을 세워 농민 자녀를 교육했으며 이듬해 월진회를 조직해 농촌운동을 전개했지만 일제의 압박으로 농촌운동의 한계를 깨닫고 1930년 중국으로 망명했다. 1931년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지도자인 백범 김구 선생을 만나 의열투쟁의 결의를 다지고 이듬해 4월 26일 김구 선생이 주도한 한인애국단에 합류했다. 윤봉길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일왕 생일인 천장절(天長節)을 맞아 일본군의 상해 점령 전승 경축식이 열린 홍커우공원(虹口公園)에서 오전 11시 40분께 수통형 폭탄을 단상 위로 투척했다. 이 의거로 시라카와 대장과 가와바타 거류민단장이 사망했고 노무라 중장, 시게미쓰 공사 등이 크게 다쳤다. 윤 의사의 의거는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독립운동의 구심체 역할을 하고 중국이 지원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의거 직후 윤 의사는 현장에서 일경에게 체포돼 상해 일본 헌병대로부터 가혹한 고문과 취조를 당했으며, 다음 달 상해 파견 일본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해 12월 19일 가나자와 육군형무소 공병 작업장에서 총탄을 맞고 25세로 순국했다. 순국 전 강보에 싸인 두 아들을 향해 "너희도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한잔 술을 부어 놓으라. 그리고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마라"라는 유언을 남기기도 했다. 윤 의사의 유해는 김구 선생의 요청에 따라 이봉창·백정기 의사의 유해와 함께 봉환돼 1946년 효창공원(삼의사 묘역)에 안장됐다. 정부는 의사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박민식 보훈처장은 "윤봉길 의사 순국 90주기를 맞아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일생을 바친 숭고한 희생정신과 애국혼을 엄숙한 마음으로 되새기며, 우리 국민이 그 숭고한 뜻과 정신을 언제나 기억하고 계승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보훈
    • 독립운동
    2022-12-19
  • [기억하기..] '12월 독립운동가' 김상태·신태식·김동신
    국가보훈처는 1907년 일어난 정미의병 등에서 항일 구국운동을 펼친 김상태·신태식·김동신 선생을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30일 밝혔다. 이들은 1907년 일제의 고종 강제퇴위, 정미조약 강제체결, 군대해산 등에 반발해 정미의병이 봉기하자 일제에 맞서 나라를 위해 항쟁을 펼쳤다. 충북 단양에서 태어난 김상태(1862~1911) 선생은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 선포에 항거해 경북 문경에서 이강년 의진(의병진영) 중군장으로 의병에 참여했으며 이강년과 함께 유인석의 제천의병에서도 활동했다. 1907년 정미의병이 발생하자 제천·단양 일대의 의병을 규합해 이강년 의진에 합류했고, 그해 12월 이강진 의진이 해산하자 독자적으로 활동했다. 이듬해 이강년이 순국하자 남은 병력을 규합해 단양군 지역에서 친일파를 처단하고 일본군을 공격하는 활동을 이어갔다. 1911년 6월 풍기군에서 체포돼 대구로 압송됐고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사형선고를 받아 9월 순국했다. 2020년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신태식 선생의 생가와 선생이 지은 창의가 표지 경북 문경 출생인 신태식(1864~1932) 선생은 1895년 을미의병이 발생하자 문경 농암(籠岩)장터에서 문경·상주 지역의 일제 밀정을 처단했다. 1907년 정미의병이 봉기하자 단양에서 의병 수백 명을 모아 도대장(道大將)이 돼 이강년 의진에 합류해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고, 울진과 평해로 이동해 신돌석과 함께 삼척에서 활동했다. 1908년 9월 홍주 전투에서 싸웠으며 그해 12월 포천에서 일본군과 교전 중 왼쪽다리에 총상을 입고 일본군에 붙잡혔다. 이듬해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상고해 10년으로 감형돼 1918년 출소했다. 출소 이후 1920년 9월 독립운동의 재정 후원을 위한 비밀결사 조직인 조선독립운동후원의용단의 경상북도 단장을 맡아 군자금을 모금해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 지원하기도 했다. 1922년 11월 의용단이 일제 경찰에게 발각돼 대구 감옥에 수감,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아 복역했다. 충남 회덕에서 태어난 김동신(1871~1933) 선생은 1907년 8월 의병 80여 명을 이끌고 기삼연, 고광순과 함께 본격적인 의병 활동을 시작했다. 민긍호의 지원으로 의진을 강화한 선생은 구례 주재소를 습격해 일본군을 격퇴했으며 순창 우편취급소와 분파소를 공격하는 등 전라도와 경상도에서 활동했다. 의진의 활약상에 각지에서 의병이 합류해 1천여 명에 이르는 부대로 규모가 확대되자 선생은 충청·전라·경상도를 아우르는 삼남의병대장으로 불렸다. 1908년 2월 일제의 대대적인 체포작전에도 의진이 건재했으나 선생이 고향으로 돌아와 신병 치료를 받던 중 일제에 체포돼 공주지방재판소에서 내란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선생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김상태 선생과 신태식 선생에게 각각 1963년과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김동신 선생은 1977년에 같은 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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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30
  • 순국112년, "안중근 의사 유해, 소나무관에 안치" 당시 중국 보도 공개
    10.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하얼빈 의거' 113주년이 되는 날이다. 의거 직후 러시아군에 체포된 안중근 의사는 여순(뤼순) 일본 감옥으로 이송됐고, 1910년 2월 14일 사형을 선고 받은 뒤 3월 26일 순국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안 의사의 유해는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그가 사형된 여순 감옥의 공동묘지가 유력한 매장지로 추정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발굴 등에 이렇다할 진척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가보훈처는 안중근 의사의 순국 당시 상황이 담긴 중국 현지 신문기사를 발굴했다고 밝혔다. 해당 자료는 국가보훈처와 주 상하이 총영사관이 독립유공자 발굴 포상에 필요한 자료 수집을 위해, 독립운동 관련 기사 3만 3천여 매를 발췌·분석하는 과정에서 확인됐다. "안중근 의사 유해, 소나무관에 안치" 당시 중국 보도 공개 안중근 사망 이후 이야기 (성경시보 1910.3.30)_국가보훈처 제공 안중근 사망 이후 이야기 (성경시보 1910.3.30)_국가보훈처 제공 중국 만주 지역에서 발행됐던 신문인 '성경시보'는, 안중근 의사 순국 나흘 뒤인 1910년 3월 30일에 보도한 기사에서 "일본 당국이 (안 의사의) 유해는 다른 사형수와 동일하게 감옥이 관리하는 사형수 공동묘지에 매장될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전했다. 특히 기사에는 안중근 의사의 동생인 안정근 지사가 감옥 관리자에게 부탁한 끝에 "하얼빈 소나무로 만든 관에 유해를 안치하고, 조선 풍속에 따라 관 위에 흰 천을 씌우도록 했다"는 등의 당시 정황도 담겼다. (아래 내용은 중국 기사를 번역한 내용.) 안중근의 둘째 동생은 안중근 처형 집행 이전에 당국을 향해 유해를 한국 원적지에 옮겨 매장할 수 있도록 간절히 요청했다. 이에 당국에서는 부득이 규정을 내세워 사형수의 유해는 감옥이 관리하고 있는 사형수 공동묘지에 매장한다고 답했다. 안중근의 둘째 동생은 곧바로 안중근과 일정한 친분관계가 있는 전옥(典獄, 감옥 관리자)에게 부탁했다. 전옥은 고심 끝에 둘째 동생에게 파격적으로 하얼빈의 소나무로 만든 관으로 유해를 안치하고 조선 풍속에 따라 백포(흰 천)를 씌우도록 허락하여 한국의 풍속을 따를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일반 사형수와는 다른 규정을 적용하여 해당 영구를 감옥 내 교회당에 안치한 다음 우덕순 이하 3명의 죄수들에게 안중근의 영구에 고별식을 갖도록 했다. 우덕순 등 3명의 죄수들은 안중근의 영구 앞에서 감개무량함을 금치 못하고 조선인의 예법에 따라 땅에 꿇어앉아 두 번 절을 했다. ‥(하략)‥ 국가보훈처는 "여순 감옥이 있는 중국 만주 현지에서 당시에 이를 보도한 기사를 처음으로 발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전했다. 안중근 의사 관련 연구 권위자인 오영섭 박사는 "안 의사의 관을 하얼빈산 소나무로 제작했다는 내용은 처음 밝혀진 귀중한 사실"이라며 "안 의사의 유해 찾기에 있어 작지만 유익한 단서를 얻은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안중근 의사 모친 장례도 상하이 교민들이 사회장으로 치러"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인 조마리아 여사의 행적이 담긴 중국 현지 신문기사도 이번 작업 과정에서 처음 공개됐다. 중국 상하이에서 발행됐던 신문인 '민국일보'의 1927년 7월 19일자 기사로, 조마리아 여사의 생전 독립운동 활동 내용을 전하는 한편 상하이 교민들이 여사의 장례를 사회장으로 치렀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아래 내용은 중국 기사를 번역한 내용입니다.) "안중근 의사 유해, 소나무관에 안치" 당시 중국 보도 공개 안중근 모친 사회장 거행 (민국일보 1927.7.19)_국가보훈처 제공 1909년에 하얼빈에서 나라의 원수인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의사 안중근씨는 그 다음 해에 여순 감옥에서 처형되었다. 그의 친동생 등이 그의 유해로 장례를 치르고자 했으나, 일본 관리들이 그 유해를 강탈하고 내주지 않아 뜻을 이루지 못했다. 안중근의 모친 조 씨는 이 소식을 듣고 분노하여 두 아들 정근과 공근 둘을 데리고 조국을 떠나 북러시아 영토로 이주하여 십 수년의 세월에 걸쳐 꾸준히 애국 사업에 노력했다. 이후 1919년에 한국에서 3.1 독립운동이 발생하자 조씨는 두 아들을 데리고 상하이로 와 광복운동에 열정을 쏟았다. 올해 봄에 뜻밖에 병에 걸려 영국 조계지의 덕국의원(德國醫院)에 입원해 몇 개월간 치료받았으나 큰 효과가 없어 7월 15일 오후 11시에 서거하시니 향년 66세였다. 상하이의 한국 교포들도 그녀의 평생 사업을 추모하여 애도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에 특별히 사회장을 거행하여 19일에 발인하기로 결정하였다. 러시아 지역 독립운동 연구 권위자인 박 환 수원대 교수는 "그동안 상하이 한인교민단 교민장으로 치러진 것으로 알려진 조마리아 여사의 장례식이 그보다 높은 예우인 사회장으로 치러졌다는 점이 새롭게 확인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가보훈처는 "안중근 의사의 순국 관련 자료를 집중적으로 수집해, 유해 발굴이 조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보훈처는 또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을 위해 중국 정부와 지속적으로 협의를 진행하고 있고, 정확한 매장지 파악을 위해 관련 국가의 주요 문서보관소 등에 대한 조사도 병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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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립운동
    2022-11-20
  • 2020도쿄 올림픽에 나타난 ‘독도는 일본 땅’
    '2020도쿄 올림픽' 개최가 57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일본은 올림픽 취소나 연기 없이 개최한다고 방침을 세우고 강행군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2020도쿄 올림픽 공식 홈페이지에 독도가 일본영토로 표기된 것이 밝혀지는 등 여전히 일본 정부의 역사왜곡 및 독도에 대한 야욕은 끝나지 않았다. 국민주권연대는 27일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독도는 일본 땅’ 올림픽 일본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이 성화봉송 지도에 독도를 일본 땅으로 표시한 것에 대해 규탄했다. 지난 2019년 한국정부와 한국민들이 일본 정부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기한 것에 거센 항의를 하자 2020도쿄 올림픽 공식 홈페이지에서 삭제를 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독도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은 분명”하다면서 한국 정부와 대한 체육회의 주장을 받아 들일 수 없다고 밝히며 향후에도 ‘독도는 일본 땅’이란 왜곡 프레임을 유지할 것을 내비쳤다. 한편, 최근 미국 정부가 일본을 방문 금지국가로 등급을 상정한 가운데 1년 연기된 2020 도쿄 올림픽이 개최될 수 있을지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각국에서 선수단 파견을 취소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한국 정부도 일본의 독도 침탈 야욕에 단호한 대처가 필요해 보인다.
    • 보훈
    • 독립운동
    • 국외
    2021-05-28
  • [책 소개] 박용규의 ‘전봉준 최시형 독립유공 서훈의 정당성’
    2차 동학농민혁명 후 체포된 전봉준은 1895년 1월 9일 나주 초토영에서 일본인 미나미 고시로에게 취조를 받는다. 미나미 : 너희들이 거병한 대목적을 숨기지 말고 말해보라. 전봉준 : 7월 일본군이 경성에 들어가 왕궁을 포위했다는 것을 듣고 크게 놀라 동지를 모아서 이를 쳐서 없애려고 다시 군대를 일으켰다. 이후 전봉준은 미나미 고시로 소좌의 서울압송 명령에 의해 1895년 1월 30일 나주를 출발해 2월 18일 서울로 압송됐다. 일본 공사관까지 들것에 실려온 전봉준은 이노우에 카오루 공사의 “어찌해서 이 폭거를 일으켰는가?”란 질문에 “작년 6월(음력) 일본병이 경성에 들어왔다는 것을 듣고, 함께 물리치려고 마침내 의병을 일으키기에 이르렀다. 우리 동학당의군, 그 무리들은 훈련이 없고 무기는 완구적인 것이다. 사람, 무기 모두 정예한 일본병에 비길 수 있다고 본디 믿지 않았던바, 그렇지만 임금이 굴욕당하면 신하는 죽는 법, 죽음을 당하고서 끝낼 결심을 가지고 일어섰다.”라고 답한다. 민족문제연구소 박용규 연구위원이 3.1절 102주년을 앞두고 한국사회가 유독 농민들의 항일독립운동에 대해 기억하지 못하고, 보훈처가 양반출신들은 대부분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았지만 농민출신들의 항일독립운동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출판사 ‘인간과자연사’에서 출판한 박용규 연구위원의 책 ‘전봉준 최시형 독립유공 서훈의 정당성’에서는 1차 동학농민운동은 반봉건에 저항하는 투쟁이었지만, 2차 동학농민운동은 그 목적이 분명하게 항일독립운동이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전봉준이 체포되어 나주 초토영에서 미나미 고시로와 나눈 취조에서도 나타나고, 서울로 압송되어 일본 공사관에서 이노우에 카오루 공사와 나눈 취조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특히 전봉준을 사형에 처한 1895년 3월 29일 법무아문 권설재판소 판결문을 보면 더욱더 분명하다. “피고(전봉준)는 일본 군대가 대궐로 들어갔다는 말을 듣고 필시 일본인이 우리나라를 병탄(倂呑)하고자 하는 뜻 인줄 알고 일본군을 쳐서 물리치고 일본 거류민을 국외로 몰아낼 마음으로 다시 군대를 일으킬 것을 도모하여 전주 근처 삼례역이 토지가 넓고 전라도 요충지여서 1894년 9월경에 태인을 출발하여 원평을 지나 삼례역에 이르러 그곳으로 군대를 일으키는 대도소(大都所)를 삼고,..(중략) 같은 해 10월 26일쯤 충청도 공주에 다다렀더니, 일본군이 먼저 공주성을 웅거하여 있기에 전후 2차례 접전하여 보았건마는 두 번 다 크게 패하였는지라.(이하 생략)” 민족문제연구소 박용규 연구위원은 “아직도 대한민국은 양반의 나라인가? 독립유공 서훈에서 항일 농민은 차별 받고 있다”면서 1894년 8월 발생한 갑오의병, 1895년 을미의병 등 의병 운동 참여자에 대해서는 국가보훈처가 지금까지 2천여 명에게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했지만, 갑오의병과 을미의병 사이에 있는 2차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농민들에게는 국가보훈처가 서훈대상에서 누락시키고 있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박용규 연구위원은 ‘전봉준 최시형 독립유공 서훈의 정당성’ 책에서 2차 동학농민혁명에 참가했다가 일본군에 의해 총살, 사살, 작두형, 화형을 당해 서거한 순국자 111명과 일본군과 싸우다가 전사하거나 일본군에 체포되어 총살 당한 순국자 6명, 일본군에 항거하다가 자결한 순국자 2명 등 총 119명의 명단을 뽑아 정리했다. 지난 2020년 3월 18일 별세한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은 병환 중에 “동학농민혁명 현재와 미래, 어떻게 할 것인가”(2019년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정기학술대회 자료집)란 논문을 썼다. 논문에서 이이화 선생은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현재의 정권에서도 전봉준 등 농민군 지도자들이 아직도 독립유공자로 서훈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하며, 문재인 정부에서는 2차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한 농민들이 독립유공자로 인정 받을 수 있기를 촉구했다. 또한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대상요건에 따르면 ‘순국선열’은 “일제의 국권침탈(1895년) 전후로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하기 위하여 항거하다가 그 항거로 인하여 순국한 분”으로, ‘애국지사’는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로 1945년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하기 위하여 항거한 사실이 있는 분”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규정에 따라 2차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한 모든 순국선열은 독립유공자 서훈 대상에 해당한다. 특히 지난 2019년 동학농민혁명이 발생한지 125년만에 정부는 동학농민혁명을 국가기념일(5월 11일)로 지정해 당시 이낙연 국무총리가 행사에 참석해 축사를 했다. 저자 박용규 연구위원은 동학농민혁명이 독립운동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일부 주장과 국가보훈처 심사위원들의 “동학농민운동은 그 동기가 반봉건 성격이 크다. 2차 봉기도 1차 봉기의 연속선에 일어났다. 동학농민운동을 민족운동으로는 보나 적극적 독립운동으로 보지 않는다. 국권회복을 위한 적극적 독립운동이 아니다. 항일이라고 해서 다 포상하지 않는다”라는 의견에 대해 “2020년부터 새로 사용하는 고등학교 8종 한국사 교과서의 서술 내용을 통해 반박이 가능하다. 8종 교과서 전부가 2차 동학농민운동은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해 재봉기를 했다’라고 기술했음”을 강조했다. 한편, 박용규 연구위원은 독립유공 서훈 내규를 고쳐야 한다고 말한다. 최근 확인된 바에 따르면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 서훈 내규에 1962년 이병도와 신석호(두 명 모두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됨)가 정한 독립유공 내규에서 “독립운동의 기점은 을미의병이다”라고 한것에 근거해 심사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즉 을미의병 이전에 발생한 2차 동학농민혁명 참가자들이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받으려면 국가보훈처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이병도와 신석호가 규정한 내규를 고쳐야 한다. 국가보훈처 먼저 친일청산을 해야한다. 이병도와 신석호에서 벗어나야 한다. 친일파 이병도와 신석호가 만든 내규에 충실하다는 국가보훈처는 을미의병 이전에 발생한 갑오의병(1894년) 참여자들에 대해서는 독립유공 서훈대상에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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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2-17
  • '김상옥 의사 일대천 서울시가전 승리 98주년 기념', 현충원 참배
    김상옥의사기념사업회(회장 박수현)는 '김상옥 의사 일대천 서울시가전 승리 제98주년'을 기념해 22일 오전 11시 국립 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된 김상옥 의사의 묘소에서 참배식을 가졌다. 김상옥의사기념사업회는 코로나19 확산예방을 위한 정부방역지침 준수와 국민들의 자발적인 방역 협조 노력에 동참하고자, '김상옥의사 일대천 항일 서울시가전 승리 제98주년 기념식'을 부득이하게 연기했다. 박수현 김상옥의사기념사업회 회장은 "의사님의 애국정신과 나라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친 분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중요한 행사임에도,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고려한 끝에 내린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라며 기념식 연기에 대해 말했다. 아울러 박 회장은 "무엇보다 코로나19로 어려움에 처한 대한민국과 국민들의 일상 회복을 위한 선택이니, 이는 평생을 조국과 민족을 위해 헌신해오신 김상옥 의사님의 뜻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라며 "기념식 연기에 대해 우리의 마음이 의사님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고 소회를 밝혔다. 나아가 박 회장은 "코로나19의 완전한 종식과 함께 다가올 100주년 기념식에 맞춰 김상옥의사기념사업회의 홍보와 후손들의 보훈의식과 호국, 민주의 가치에 대한 교육에도 앞장 설 것이다"라며 "특히 세대와 연령에 맞춘 교육 자료의 다각화, 청소년기 학생들을 위한 맞춤형자료집, 아동도서보급에 중점을 두고 우리 사회 보훈 문화 확산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김상옥의사 묘소참배는 박수현 김상옥기념사업회 회장, 김진혁·차영준 김상옥기념사업회 부회장, 유족대표 김세원 김상옥기념사업회 이사가 참여한 가운데 코로나19 방역지침을 준수하고 약식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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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22
  • 조선의열단기념사업회 2대 회장에 박우섭 씨 취임
    조선의열단기념사업회는 10일(화) 오후 6시 광복회관 3층 대강당에서 초대 김원웅 회장의 뒤를 이어 2대 박우섭 신임회장이 취임하는 회장 이·취임식을 연다. 충남 예산 출신의 박 신임회장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오랜 정당 활동을 하였으며, 세 번에 걸쳐 인천 남구청장을 역임했다. 임기는 3년이다. 또한 조선의열단기념사업회는 이날 회장 이·취임식에 이어 조선의열단 창립 제101주년 기념식과 함께 기념사업회 내에 반민족행위 및 친일잔재청산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발대식을 가진다. 특위는 광복 75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는 친일의 잔재가 청산되지 못한 채, 민족공동체 회복을 가로막고 있어 시대적 요구에 따라 조직되었으며, 앞으로 △ 전국적인 조직과 네트워크 구성, △ 전국 광역단체 및 기초자치단체 조례제정 캠페인, △ 반민족 행위 처벌을 위한 국회 입법 캠페인, △ 친일잔재 문화, 언어, 구조물, 생활문화 등을 청산하기 위한 활동 및 캠페인 등을 벌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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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1-08
  • 경북도, ‘경상북도 독립유공자 후손 주거개선사업’ 첫 시행
    경상북도(도지사 이철우)는 9월 16일 안동시 임하면에 소재한 독립운동가 임윤익 선생의 후손 임시재 어르신의 주택을 고치기 위해 이철우 경북도지사를 비롯해 윤형주 한국해비타트 이사장, 김형동 국회의원, 권광택 경북도의원, 권영세 안동시장, 경북독립운동기념관장등 15여명이 ‘경상북도 독립유공자 후손 주거개선사업’의 첫 시행을 위해 모임을 가졌다. '경상북도 독립유공자 후손 주거개선사업' 은 지난 8월 15일 경북도-한국해비타트-경북청년봉사단 간 체결한 ‘희망의 집 고치기 업무 협약’ 의 일환으로 시작됐다. 제1호인 임시재 어르신의 주택은 목재계단 설치, 내·외부 단열 및 도배, 장판·싱크대·창호 교체, 화자실 개보수 등 추석 이전에 리모델링을 마쳐서 추석을 보내실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독립유공자 후손인 임시재 어르신은 “이렇게 많은 사람이 나서서 독립운동을 하신 할아버지를 알아주시고, 후손들을 도와주니 가슴이 뜨거워진다”며 이동일 광복회 경북지부장과 함께 깊은 감사를 표했다. 이철우 도지사는 “호국의 땅인 경상북도는 현재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분들과 그 유족들에게 그에 걸 맞는 예우를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 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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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17
  • 2020년 경북 9월의 독립운동가 김수곡 선생 선정
    2020년 경북 9월의 독립운동가로 김수곡(金水谷) 선생이 선정됐다. 김수곡 선생은 경상북도 영천 출신으로, 1876년에 태어났다. 1907년 일제가 강제로 한일신협약을 체결하고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하자, 항일 무장투쟁을전개하기로 결심하고 정환직 의진에 투신했다. 그해 10월 정환직의 명을 받고 100명이 넘는 의병들과 함께 경상북도 흥해읍 우편취급소를 급습해 일본인 소장 가족을 처단한 뒤 300여 원의 공금을 노획하는 한편, 곧바로 경무분파소와 인근에 있는 일본인 가옥을 불태웠다. 이어 신령읍·의흥읍 등을 기습 공격해 수백 정의 총기를 빼앗고, 분파소와 일본인 가옥을 불태우는 등 활발한 의병투쟁을 전개했다. 1909년 12월 총검으로 무장하고 의성군 점곡면에서 군수품을징수한 뒤, 계속해서 일제 기관과 시설 파괴, 친일 앞잡이 처단, 군자금 모금 등에주력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1910년 9월 대구공소원에서 동지들과 함께 교수형을 선고받고 형 집행으로 순국했다. 대한민국정부는 김수곡 선생의 공을 기리어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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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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